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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2일 30년 전, 워드프로세서가 대학가에 불러 온 변화 [오래 전 ‘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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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해미 작성일20-06-12 20:47 조회1,1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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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6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1990년대 시중에 쏟아져 나온 윈도즈용 한글워드프로세서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5년
■1990년 6월12일 대학가 워드프로세서 붐

지금은 대중화된, 그래서 너무나 당연스럽게 생각되는 많은 기술들은 도입 초 대중의 찬사와 함께 시대의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30년 전, ‘고급 사무기구’였던 문서작성 프로그램 워드프로세서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워드프로세서는 대학가에 어떤 바람을 몰고 왔을까요?

1990년 6월12일자 경향신문 갈무리
“젊은이들의 필기방법이 달라지고 있다. 최근 1~2년 사이에 대학가 등에 ‘워드프로세서’와 전자식 타자기 등이 많이 보급되면서 대학생들의 필기 방식에도 새로운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이다”

이전까지 ‘고급사무기’에 속했던 워드프로세서가 사무실 전용품목이 아닌 대학동아리와 교회·절 등지의 소모임처, 대학생들의 공부방 책상위에까지 등장하며 90년대 초 대학가에 ‘워드프로세서 붐’이 불었습니다.

등·하굣길 동료 대학생들에게 나누어 주는 ‘운동 권유물’과 각종 안내문을 비롯해 웬만한 중소기업에서도 ‘노조회보’ ‘성명서’류의 유인물을 만들때 이용할 정도로 워드프로세서의 인기는 날로 높아졌는데요,

기사에서는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해 글자크기와 모양새가 적절히 조정되고 깔끔하게 편집된 인쇄물이 대종을 이룬다”며 “80년대 초만해도 흔했던, 갱지에 등사글씨로 흐릿하게 인쇄됐거나 글자의 받침 부분이 엉성한 타자체로 만들어진 대학가의 각종 유인물도 이제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라고 전하고 있네요.

이처럼 워드프로세서가 인기를 끈 가장 큰 이유는 편리함 때문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오자를 지울 수 있는 점’ ‘한번 쳐 둔 내용을 여러번 똑같이 빼내어 쓸 수 있어 복사기를 찾을 필요가 없는 점’ ‘키를 누름에 따라 화면에 나타나는 글씨를 바라보며 적절한 한자를 찾을 수 있는 점’ 등이 워드프로세서의 ‘굉장한 매력’으로 꼽혔습니다.

당시 석사졸업 논문 작성에 워드프로세서를 활용하고 있다고 밝힌 한 대학원생은 “용도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일단 쓰인 글자를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네요. “선을 긋고 도표까지 작성하는 등 기능이 좋아져 일상적인 리포트는 물론 논문작성에 필수적인 도구”라며 자신이 속한 과의 다른 학생들도 대부분 이용하고 있다고 전하며 청계천 등지에서 시중보다 20%가량 싸게 구입할 수 있다고도 귀뜸했네요.

워드프로세서의 대중화는 다양해진 제품, 가격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2년
당시 시중에 판매되던 워드프로세서는 현대·삼성·라이카·삼보 등의 회사에서 만든 10여종으로 가격도 40만원대에서 130만원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습니다. 이중 최신품의 경우 한글과 영어는 물론 노어(러시아어) 등 13개국 문자까지 한꺼번에 활용이 가능했습니다. 레포트, 논문 등 문서 작성을 많이하는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을만 하네요.

기사에서는 당시 대학생 과외 허용 조치 이후 학생들의 주머니 사정이 꽤 풍성해졌다는 점도 인기에 한몫을 했다고 분석했습니다.

방학동안 과외 아르바이트를 통해 70만원짜리 워드프로세서를 구입한 한 서울대생은 “조금만 연습하면 워드프로세서가 손으로 쓰는 것보다 훨씬 시간이 절약되는데다 교수들도 이것으로 작성한 레포트를 좋아하는 것 같다”며 수업시간표를 작성하거나 주소록 작성, 편지를 쓸 때에도 자주 이용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당시 대학생들에게 워드프로세서가 획기적인 도구임이 분명했지만, 예찬론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물질사회의 ‘비인간화’와 ‘획일성’ 등을 재촉하는 기구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요, 기사에서는 “모든것이 규격화되고 계량화한 현대사회에서 자신의 개성을 강하게 나타내는 글씨까지 규격화함으로써 개성이 나타날데가 자꾸 줄어든다”고 지적했습니다.

1백만원이 넘는 고가품을 손쉽게 구입한다는 것 자체가 과소비 풍조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과 함께, 시대 변화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나는 기사의 마지막 문장이 인상 깊습니다.

“어쨌든 이제는 신림동 등지의 대학촌에서 밤늦은 시각 고향의 부모님께 차분한 필체로 ‘전상서’를 쓰는 대신, 워드프로세서를 앞에 두고 타닥거리는 대학생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게 됐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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